마태복음 17장 22절에서 23절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니라"
주님께서 당신의 죽임 당하심과 부활하실 것임을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가르쳐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들었으면, 첫 번째는 그렇게 베드로가 돌발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두 번째는 그 말씀 받아들여야 되지 않습니까?
"~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주님 말씀 듣고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헬라어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깊이 슬퍼하였다."
왜? 부활을 못 믿으니.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거든요.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주님 말씀의 방점은 살아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은 아예 제쳐버렸습니다.
죽는다는 얘기만 듣습니다. 왜?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스승, 주님이 죽는다니까 그들은 매우 슬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러니까 금요일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께서 금요일 닷새 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그리고 세 번째로, 주님께서 당신의 죽임 당하심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밝혀주십니다.
마태복음 20장 17절 19절.
제자들이 두 번 다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방인들은 로마 제국입니다. 빌라드 총독에게 넘겨주어.
이번에도 주님의 방점은 살아난다는 데 있습니다.
근데요. 제자들은 세 번째 들으니까 주님께서 죽으신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이제 우이독경이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아~ 저건 뭐 으레 주님께서 저렇게 하시는 말씀.'
주님의 이 말씀이 끝나자마자 뭐 했는가?
세베대의 아내인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 청탁을 넣었습니다.
"예수님, 예루살렘에 가시면 당신의 오른쪽에 내 아들 한 명, 왼쪽에 또 한 명 좀 두십시오."
지금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죗값을 치르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신다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제자들과 주위 사람들은 그 바다 위를 걸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토막으로 수천 명을 먹이시던 그 신통력으로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빌라도 총독을 쫓아내고 자기네들에게 정치적인 해방과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다주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베대의 아내가 먼저 청탁을 넣었습니다.
"당신이 집권하시면 내 두 아들 우의정, 좌의정 시켜주십시오."
그 소문이 다른 제자들한테 퍼졌습니다.
제자들이 분노했습니다.
"너희 둘이만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집권하시면 "실제로 우리 가운데 누가 제일 크냐? 누가 제일 좋은 자리 맡을 거냐?" 하고
자기네들끼리 누가 제일 큰지를 놓고 싸웠습니다.
부활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동시에,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이 세상에만 몰입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주님을 믿는 제자들이 첫 번째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니까.
그 첫 번째 교회가 이렇게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불신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실체는 어떠했던가.
요한복음 21장은 사복음서의 마지막 장인 동시에 요한복음 21장의 결론장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에 연이어서 교회의 역사를 일러주는 사도행전이 시작되거든요.
그 요한복음 21장 중에서 제일 마지막 단락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8절에서 19절.
지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야. 지금까지는 네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나를 믿는다 하면서도 네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 그런데 이 다음부턴 말이야. 네가 두 손을 벌릴 거야. 나한테 항복할 거야. 그리고 네 허리띠를 내가 멜 거야. 그리고 네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끌어가는 곳으로 네가 따라와야 해."
주님의 그 말씀은 베드로가 어떻게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 하는 것을 가리켰다.
베드로의 순교를 그렇게 표현하신 겁니다. "너 나를 위해서 순교해야 돼."
베드로가 자기가 주님을 위해서 순교해야 된다는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0절에서 21절입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베드로는 자기가 순교한다는 예수님의 말을 듣는 순간에, 베드로가 고개를 돌려서 요한을 쳐다봤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할 때에도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자들이 요한을 시기하지 않겠습니까? 혼자서 예수님 사람 독차지하니까.
그러니까 베드로가 고개를 돌려서 요한을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주님, 나는 순교한다는데, 쟤는 어떻게 돼요?"
베드로하고 요한하고 라이벌이었던 걸 압니다.
베드로는 쟤가 궁금해 죽겠는 거예요.
요한복음 21장 2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주님께서 "베드로야, 저 요한은 말이야. 내가 재림할 때까지 살게 둘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가정법입니다.
설령, "내가 요한은 순교당하지 않고 그대로 살게 내버려 둔다 한들 그게 왜 니가 상관할 일이니? 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21장 23절입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
예수님은 가정법으로 얘기했습니다.
"내가 재림할 때까지 쟤를 살려둔다 할지라도~"
그런데 그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얘들아, 얘들아, 요한은 안 죽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누가 왜곡했겠습니까? 그 말씀을 제일 먼저 들은 베드로가 왜곡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3절.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그리고 이 이후 두절은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의 결어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실제 사복음서와 요한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이 구절입니다.
제자들 사이에서 요한은 안 죽는다는 거짓말이 퍼졌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할지라도 너한테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러분 최초의 교회인 제자들의 모임에서 이처럼 질투와 시기, 거짓모함, 선동.
왜? 부활을 못 믿으니까. 부활을 못 믿으면 주님의 죽임 당하심이 나를 위한 죽임 당하심이라는 것도 못 믿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렇게 시기하고, 서로 거짓말을 거짓말로 모함하고, 이렇게 하는데 이 속에 과연 자기 헌신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자기 부인이 있을 수 있습니까?
주님을 위한 순종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사시대처럼 전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들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심한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님에 사로잡히면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이 고백을 삶으로 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누구십니까?
사도행전 16장 6절에서 7절입니다.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한 사도바울이 오늘날 튀르키예 중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
무슨 연유인지 성령께서 "너 여기서 복음 전하지 말라." 막으셨습니다.
"~ 그들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주님께서 중부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바울이 제일 북쪽으로 올라가서 거기서 동진을 하려고 했는데 예수의 영이 또 막으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령과 예수의 영을 동격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아닙니까?
내가 기도하면서 예수님 하고 부를 때 그 예수님의 호칭 안에서 성자 아버지와 성령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 할 때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십니다.
내가 성령님 할 때 성부와 성자가 함께 역사하시는 거예요.
오순절날 강림하신 그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기도 하신 겁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성령, 부활하신 주님의 여기신 성령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그들이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이 임한 다음에 제자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시기하고, 모함하고, 거짓말 퍼뜨리고.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오늘 본문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서 25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
뭐가요?
모든 육체. 이거.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제 육체가 있는데, 이거 풀하고 꽃 같아요.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이, 내 고깃덩어리가 다 썩어 문드러지면 남는 건 해골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모든 육체는 해골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
육체는 해골이 되는데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어떤 말씀?
"~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너희에게 전한 이 복음이 뭐예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제물로 죽임 당하셨다가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 이게 복음입니다.
이 이후에 베드로는 온갖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엔도 슈사쿠라는 일본 작가가 책 두 권을 썼습니다.
첫 번째 책 제목이 예수의 생애입니다.
두 번째 책 제목이 그리스도의 탄생이에요.
여러분, 이상하죠?
첫 번째 책이 예수의 탄생이고, 두 번째 책 제목이 그리스도의 생애가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엔도 슈사쿠는 예수의 생애를 먼저 놓고, 2권이 그리스도의 탄생입니다.
철저하게 제자들의 입장에서 썼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자기들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옷자락 잡고 야단치고요. 주님의 말씀을 왜곡해서 거짓말 퍼트리고.
예수의 생애입니다.
그 예수가 죽임 당한 다음에 부활하시고 그 영을 보고 나니까 비로소 제자들 마음속에 예수가 그리스도로 탄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의 주가 내 속에 계시니까.
여러분, 초대교의 교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박해를 당할 때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 예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사자의 밥이 되거나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에 타 죽으면서도, 사자의 밥이 되어서 죽으면서도 예수가 살았다고 외쳤습니다. 왜?
부활하신 예수를 진짜 만났거든요.
여러분, 오늘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서 죽임 당하시는 것으로 끝나면 예수님의 구원은 이 땅에 국한됩니다.
우리도 공동묘지에서 끝납니다.
사순절이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것은, 사순절이 바로 주님의 부활을 향하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절을 지나는 동안에 여러분은 주님의 고난을 볼 것이 아니라, 그 고난당한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음"을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 답을 얻었습니다.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조롱과 비난을 대상으로 전락했는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을 믿지 않는 것이고,
영원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아무리 헌금 많이 하고, 아무리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해도, 여러분의 믿음은 세상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돈 더 많이 벌고, 내 자식 잘 되고, 그게 다예요.
예수께서 그것을 위해서 돌아가셨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진리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죽어가는 많은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십시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1F4BFqBrsk] 이재철 목사 설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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