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님 설교

30, 40대가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pass-away 2026. 6. 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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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입니까?

빈부, 귀천, 남녀노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교회입니까?

부자동 내에 빈민이 없습니다.

가난한 동네 교회에 부자가 안 갑니다.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거죠.

그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교회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오늘날 교회에 남녀노소, "소"가 있는가? 젊은이들이 있는가?

교회가 영속성을 지키려면 어느 시대나 교회 속에는 젊은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없습니다. 
젊은이들, 3040대가 교회를 떠나니까. 그 3040대를 부모를 따라서 교회에 오던 교회학교 아이들도 없습니다.

한국의 교회학교 없는 교회가 날로 늘어갑니다.

그 부모들이 교회를 떠났거든요.

보편적인 교회 아닙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나이 든 사람만 모여 있는 동아리 교회입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여러분 30대 40대면 여러분들 그 나이 다 거쳐 오셨지만 30대 40대 젊은이들의 눈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30대 40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장 지적인 활동이 왕성할 때이고 따라서 비판적일 때입니다.

그들의 시각으로 한국 교회를 한번 보십시오. 

개신교는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주교, 일반 교인으로 이루어지는 이 철저한 계급주의, 하이어라키에 대항해서 만인제사장 사상을 표방하면서 태동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회가 만인제사장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서리집사, 교훈, 교인, 철저하게 계급주의입니다.

변형된 카톨릭 계급주의 입니다.

장로들 계급 속에서도 얼마나 계급이 많습니까?

원로장로, 은퇴장로, 협동장로, 시무장로 중에서도 안수받은 날짜에 따라서 서열이 다 정해져 있습니다. 

이건 교회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크리스천들이 절에 놀러 가서 보면서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게 그 천정에 걸린 연등 아닙니까?

연등의 크기가 다 다릅니다.

5만 원짜리, 10만 원짜리, 100만 원짜리 다 다릅니다.

거기에 연등 바친 사람 이름 다 쓰여 있죠.

기와장 하나 하는데 기와장 뒤에 이름 다 씁니다.

그거 제일 우습게 생각하고 봐요.

그런데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데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게 아니라 헌금 봉투에 이름 쓰고 주보에 이름 냅니다.

젊은이들한테 이런 것이 용납이 될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얘들아, 세상의 집권자들 함 봐라. 너희들 위에서 군림하고 너희들 막 부려 먹지. 그런데 인자는 그렇지 않아. 인자는 오히려 너희들의 종이 되려고 왔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대속물이 되기 위해서 내 생명을 내어 놓으려고 왔어. 너희들도 으뜸이 되고 싶니, 너희들도 높아지고 싶니, 그러면 먼저 종이 되거라. 먼저 섬기는 사람이 되거라."

이 좋은 소리가 교회에서는 다 선포는 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볼 때 교인을 섬기는 목사를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군림하는 목사들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제네바는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개혁의 총 본산지입니다.

그러면 500년이 지났다 할지라도 제네바에는 그 개혁의 정신을 잇는 개신교인들로 가득 차 있어야 될 것 같이 생각되지요.

제네바시가 발행하는 설문조사를 보면요.

제네바시에는 현재 개신교 신자보다 가톨릭 신자가 더 훨씬 많습니다.

지금 현재의 시작된 현상이 아니고요. 500년 전부터입니다. 

500년 전에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제네바가 다 개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종교 개혁의 광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서 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가톨릭은 교황이 한 사람밖에 없는데 제네바에는 개신교 교회마다 교황이 있는 거예요.

그 교황들끼리 타협하지 않아요.

그들 사이에 절대로 어떤 의견이 일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개신교로 왔던 많은 제네바 시민이 "이렇게 많은 교황을 모시기보다 우리는 옛날처럼 한 사람 교황 모실래."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아간 겁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젊은이들의 눈으로 보면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 말씀, 좋은 말씀은 하면서도 성경관은 철저하게 유리된 종교기업, 종교집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떠나는 겁니다. 

청년들이 떠나니까 그 자식들도 함께 떠났습니다. 

대한민국 교회 미래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교회가 이렇게 보편성을 상실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대한민국 교회가 보편성을 상실한 이유는 바로 "거룩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가치와 똑같은 가치로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고 내 자식, 남의 자식보다 더 잘 되고, 좋은 스펙 쌓고, 더 많이 돈 벌고, 이것이 최고의 가치관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가치관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교회가 거룩성을 상실한 겁니다.

거룩성을 상실할 때 교회의 보편성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제가 제네바에 있을 때 그 유명한 제네바 콩쿠르를, 예선전부터 본선전까지 다 한 번 관람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네바 콩쿠르는 세계 콩쿠르 중에서 제일 역사가 깊은 콩쿠르입니다. 

마침 제가 목회하던 제네바 한인교회 여성 청년 한 명이 거기에 출연을 해서 제가 관람을 하게 됐는데요. 

예선전 할 때는 제네바 음악원 큰 홀에서 반주자 피아노 한 사람의 반주로 이제 노래를 합니다. 

그러면 그 앞에 심사위원들이 쭉 앉아서 심사를 하죠. 

그러니까 저희 같은 아마추어는 하루 종일 계속 순번대로 하는데 누가 정말 잘하는지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을 할 때 1600석의 빅토리아 홀에서 하는데 그 무대에는 약 7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앉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 연주하는 속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노래를 하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몰랐습니다. 

예선전하고 본선전은 다르니까 스케일이 다르니까 오케스트라가 나오나 보다. 딱 시작을 했는데요. 

어떤 사람은 표정을 보면 노래는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데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립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에 파묻히는 거예요. 

그날 입상을 한, 공동 1등을 한 독일, 미국 성악가 그리고 2등을 한 한국 청년 그들이 노래를 하는데요. 
그 70명의 오케스트라단의 각각 다른 악기가 그 큰 소리로 연주를 하는데, 그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 연주를 들고 착~ 전달되어 오는 거예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음악소리의 파장과 파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파장이 똑같으면요. 큰 소리에 작은 소리가 묻혀버립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 소리가 커도 이 소리와 다른 파장을 쏘면 이 큰 소리를 뚫고 나갑니다.

그러니까 그날 입상한 모든 성악가들은 자기의 파장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본선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연주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의 소리가 왜 세상에 파묻히는가? 

교회의 소리가 아무리 외쳐도 왜 세상이 꿈쩍도 안 하는가? 

세상과 파장이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파장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에 음향전문가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그래미 녹음 기술상을 한국인으로 두 번 연거푸 탄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는데, 이분이 한국의 모든 소리를 지금 녹음하고 있습니다.

순천에 있는 송광사에 가서 천 년 동안 이어져온 새벽 예불을 이 사람이 녹음을 했습니다.

그 소리는 천 년 된 소리예요. 
그러니까 거기에서 염불을 외우는 그 스님은 자기 바로 윗대 스님한테서 전수를 받았고 그 윗대 분은 또 그 윗대에 받았고 천 년 동안 전수되어 온 염불 소리입니다. 

그 예불소리를 녹음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분이 서울에 있는 대형교회 새벽기도의 소리를 녹음을 했습니다. 

수천 명이 "주여~" 삼창하고 아~ 소리를 지르잖아요.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뭐라 그러는지 아십니까?

스님 한 사람의 염불소리가 수천 명의 기도소리를 압도하더라. 이유가 뭐겠습니까? 

대형 교회에서 새벽에 특새(특별새벽기도)한다고 수천 명 모여서 소리 지르는 그 기도 소리가 "주여, 내가 진리를 따르는 진리의 사람이 되겠다."고 소리 지릅니까? 아닙니다.

다 욕망의 소리 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속세를 떠난 사람입니다.

다른 파장을 가지고 있어요.

그 다른 파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수천 명이 욕망의 소리를 내는 그 파장을 압도하는 겁니다.

판소리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파장을 가져야 되거든요.

연습만 많이 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 판소리 명창들은 폭포가 흐르는 폭포 뒤에 동굴 속에 들어가서 득음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득음을 하면 그 소리가 폭포를 뚫고 나옵니다. 

폭포와 다른 파장을 얻은 거죠. 

그러니까 폭포 소리가 막 떨어지는데 그 소리를 뚫고 그 명창의 소리가 "아~" 하고 나오는 거예요.

저는 그 명창의 그 판소리 노랫소리를 바로 한 방에서 바로 얼굴 앞에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파장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사야 42편 1, 2절입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의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당신의 종 메시아가 이 땅에 올 때 그는 외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더운 나라니까 집집마다 다 창문이 있는데, 그때는 유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창문이 있으면 그냥 뚫려있는거거든요.

그러니까 집 안에서 크게 얘기를 하면 길거리에 다 틀리는 거예요. '저 부부가 지금 무슨 얘기하는구나.'

그런데 예수님께서 집 안에서 얘기하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절대 큰 소리로 하시지 않는다. 

그 예수님의 소리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뒤집었습니다. 왜? 

파장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된 파장이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이걸 예수님께서 부흥사들처럼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상상이 되십니까?

 

산상수훈을 하시면서 산들바람처럼 잔잔한 소리로 말씀하셔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폐부로 다 파고드는 겁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을 찾아야 바른 교회가 될 수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JXZAtmQ7lnI] 이재철 목사 설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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